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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원 교수 의사자 불인정? '의사상자 보상과 조건 그리고 선정되 사람들은?'

by 대동방동 2019.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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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상자란?


본인의 직무와는 상관없이 타인의 생명이나 신체 또는 재산을 구하다가


사망하거나 (의사자) 부상을 입은사람 (의상자)



지원대상 및 선정기준은?


1. 보상금은 의상자 및 의사자 유족에게 지급된다.


의상자의 경우 본인에게 의사자 유족의경우 에는 그 배우자, 자녀, 부모, 조부모또는 형제자매 순으로 지급


2. 의료급여는 의사자 유족 및 1~6급 의상자와 그 자녀에게 지원한다.


3. 교육지원은 의사자의 자녀 및 1~6급 의상자와 그 자녀에게 지원한다.


3.장제지원은 의사자의 장제를 행한 자에게 지원한다.



혜택의 지원 내용은?


1. 2019년도 의사자 보상금은 2억2,172만8천원이다.


(다만, 보험금,배상금 등을 받을시 그해당 금액을 제외 하고 지급한다.)



2. 2019년도 의상자 보상금은 1~9급별로 보상금의 5%~100% 차이가 있다.


(9급 5% 8급 10% 7급 20% 6급 40% 5급 52% 4급 64% 3급 76% 2급 88% 1급 100%)


(의사상행위 발생년도 기준으로 보상금지급)



3. 의료급여는 의료급여법이 정하는 의료급여로 지원한다.



4. 교육지원은 교육급여 실시 내용과 동일하게 지원한다.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에 따라 학비를 감면 또는 전액지원 받을수있다.)



5.취업지원 신청을 받은 시/군/구는 신청자의 연령, 학력, 자격 및 부상 정도를 고려하여


직업훈련 시설에 훈련을 위탁하거나 공공기관 또는 적절한 직장에 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6. 주거지원 (국민주택등을 그 건설량 10%내 우선순위기준에따라 한 차례 한정하여 1세대 1주택을 특별 공급 받을수있다.)



7. 장제지원은 장제급여 실시 내용과 동일하게 지원한다.


(장제를 행한자에게 장제에 필요한 비용을 지급, 지원 한다.)



8. 의사상자 국립묘지 안장 신청 가능 (안장 비용은 모두 국가가 부담, 다만 국립묘지로 이장하는경우 별개)


다만, 다음의 어느하나에 해당하는경우 국립묘지 안장 불가능


1.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한 사람


2. 수형 사실이 있는자


(다만, 수형사실 자체가 민주화 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해당하여 공적이 되는사람은 국립묘지에 인장 가능)


3. 탄핵이나 징계처분에 따라 파면 또는 해임된 사람


4. 그밖에 안장대상심의위원회가 국립묘지의 영예성을 훼손한다고 인정한 사람


이외에도 훈장등 영전이 추서될수도 있다.


다만, 이 모든 혜택 지원은 의사상자 인정결정을 통보받은 날부터 3년이 지나면 신청 할수없다.





의사자로 선정된 인물들


의사자


1. 금나래,황지영 - 2009년 8월 9일 오전 4시경 친구들과 함께 피서를 마치고 충남 서천군 서해안고속도로 하행선 (서천 IC 부근)을 달리던 도중 승용차 한 대가 가드레일과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대형 교통사고 현장을 발견했다.


두 사람은 급히 자신들이 타고 있던 차를 갓길에 세우고 안에 있는 사람을 구해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차도 1차선에 있던 사고차량 옆에서 핸드폰의 불빛에 의존하여 수신호를 하면서 보험회사에 연락하는 등의 사고처리를 돕는 구조작업에 매달렸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이들을 보지 못하고 뒤에서 달려오던 카렌스 차량이 두사람을 덮쳐 끝내 숨을 거뒀다. 


사고 당시 23세와 24세였으며 사망후에 전라북도 김제시 최초로 의사자로 선정되었고 2010년 12월 22일에 제 3회 시민영웅 시상식에서 2010년 올해의 시민 영웅상을 추서받았다.



2. 김다예, 김민화, 이진희 - 울산광역시 중구 내황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던 이들은 2003년 7월 19일, 울산 태화강에서 물놀이를 하던 도중 물에 빠져 떠내려가는 같은 학교의 2학년 후배 어린이를 구하려다 대신 숨지고 말았다.


2006년 5월 19일 정부로부터 의사자로 선정되었고 모교인 내황초교에서는 제 85회 어린이날 기념행사에서 추모비를 건립하고 울산 의사자 3 어린이 (또는 세 의사 어린이)로 호칭하여 이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렸다. 2007년 2월 14일에는 이들이 다닌 내황초 제 16회 졸업식 때 명예졸업장이 수여되기도 했다.



3. 박은혜 - 1989년, 충남 연기군 동면 미호천 내 골재 채취장에서 웅덩이에 빠진 어린이를 구하고 자신은 물에 빠져 11세의 나이로 숨졌다.



4. 변지찬 - 2005년 충남 당진군 면천면 송학리 검암천에서 물놀이를 하던 중 먼저 물에 빠졌던 친구를 구하려다 같이 숨졌다.


당시 친구가 무려 2m 깊이의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자 이를 본 변군이 망설이지 않고 가까이 가서 손을 내밀어 구하려다가 물에 빠져 안타깝게 8세라는 어린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



5. 최성규 - 1996년 8월 10일 밤, 한 여대생이 성폭행을 당하는 것을 보고 여대생을 구해주러 달려갔다가 가해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6. 박지현, 서태용, 채덕윤 - 1999년 6월 30일 화성 씨랜드 참사 때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화재 당시 유치원생들을 구조하러 화염 속에 뛰어들어가 목숨을 바쳤다.



7. 이수현 - 2001년 도쿄 야마노테선 신오쿠보역에서 추락한 취객을 도우려다 선로에서 벗어나지 못해 희생되었다.



8. 김지연 - 2003년 8월 24일 새벽 3시 30분 경기 시흥시 신천동의 한 놀이터에서 베트남 출신 외국인 노동자들인 웬뚜안뚜(24)와 레휘황(29)이 귀가하던 여고생을 성폭행 하는 것을 보고 이를 제지하려다가 김 군은 웬뚜안뚜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인천 길 병원으로 후송,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



9. 심경철 - 2001년 1월 15일 오전 10시경 거제남여도 부근 바다를 항해하던 중 유조선의 선수중앙부에서 원인을 알수없는 폭발사고가 발생하여 여성 실습생 2명이 위험에 빠지자 자신의 목숨이나 마찬가지인 구명기구를 던져 구하고 자신은 숨졌다. 2017년 12월에는 12월의 현충인물로 선정되었다.



10. 전재규 - 남극세종기지에서 한국해양연구원의 연구원으로 일하던 그는 2003년 12월 8일에 기상악화로 귀환하지 못한 3명의 팀원 동료들을 구하기 위하여 출항하였다가 보트가 전복되어 사망하였다.


2007년 11월 국립대전현충원에 의사자로 안장되었고 국민훈장 석류장이 추서되기도 하였다. 나중에는 2016년 12월의 현충인물로 선정되었고 그가 사망했던 지점에 있는 해저화산이 '전재규 화산'으로 명명되기도 했다.



11. 조대형 - 자율방범대원으로 일하던 조씨는 2006년 5월 8일 서울외곽순환도로에서 고장 차량을 갓길로 옮기던 도중 뒤따라오던 트럭에 치여 숨졌다.



12. 이용상, 허석희, 정봉조, 안상철, 김재후, 박연주, 람방 누르카효, 김종평, 하레파 유스푸 -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 후 민간 어선인 금양호를 몰고 천안함 희생자 구조에 힘쓰다가, 선박이 충돌하여 침몰하게 되어 사망했다.


안타깝게도 람방 누르카효와 김종평의 두명만 시신이 발견되었고 나머지 7명은 아예 찾지못하고 말았다.



13. 올즈보이 오강거, 다와 - 처제와 조카 사이로 당시 18세와 32세 였으며 몽골인인 이들은 경기 광주시에서 2011년 7월 집중폭우가 내리는 가운데 이웃집 할머니의 부탁을 받고 배수구를 막고있는 장판을 제거하는 정비작업을 하다가 두 사람이 장판을 들어올리는 순간 고였던 물의 급류가 한꺼번에 불어나 배수구로 빨려 들어가면서 휩쓸려 숨졌다.


이들의 시신은 각각 1㎞와 3㎞ 떨어진 하천에서 상처투성이의 익사체로 발견됐다.



14. 오판석, 박창섭 - 2012년 인천 페인트원료 창고 화재 때 추가 피해를 막으려다가 숨졌다.



15. 강신일 - 2013년 1월 24일, 제주시 소재 감귤 공장에서 동료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구조하기 위해 감귤찌꺼기 저장 창고로 들어갔으나 남아 있는 유독가스에 질식해 사망했다.



16. 이준형 - 2013년 7월,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 참사에서 물에 빠진 친구를 구하기 위해 다시 바다로 들어가 친구들을 구하고 사망했다.



17. 양성호 - 2014년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에서 붕괴 후 사고 현장에서 빠져나왔음에도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사고 현장으로 다시 뛰어들어갔다가 빠져나오지 못해 숨졌다.



18. 지영, 정현선, 김기웅 - 2014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승무원이었던 이들은 다른 선박직 승무원들이 모두 빠져나간 상황에서 학생 등 승객들의 구호에 끝까지 힘쓰다 세월호에서 탈출하지 못해 숨졌다.



19. 양대홍 - 2014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사무장이었던 그는 본연의 업무를 하고 있다는 이유로 의사자로 선정이 안되었었으나, 2015년 6월 18일 보건복지부 제2차 의사상자심사위원회에서 의사자로 선정되었다.



20. 정차웅 - 단원고등학교 학생으로,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하고 친구들을 더 구하겠다며 스스로 바다에 뛰어들다 끝내 숨졌다.



21. 안치범 - 2016년 9월 9일 새벽 4시경, 마포구의 원룸에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고 이를 목격한 안 씨가 불길 속을 뛰어 들어가 모든 원룸의 초인종을 누르고 전원 대피시켰으며 안 씨는 연기에 질식해 9월 20일 숨졌다.



의상자


1. 김행균 - 2003년 7월 25일 09시 09분 경 경부선 영등포역 8번선에서 안전선을 넘어 선로 쪽으로 접근하는 어린아이를 발견하고 밀쳐 구한 뒤 자신은 넘어져 열차에 치여 두 다리를 잃었다.


같은 해 11월에 철도청 직원들에 의해 그의 희생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졌으며, 12월 17일에 국가의상자 1급 판정을 받았다. 기념비는 8번선으로 내려오는 계단 바로 옆에 있으며, 당시 고 상황과 그의 약력이 간략히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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